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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플린의 첫 번째 비극

1923년에 제작된 파리의 여인을 두고 각본, 연출에 작곡까지 담당했던 찰리 채플린은 '내가 출연하지 않는 나의 첫 번째 비극'이라고 말했다. 채플린의 영화에 대해 누구나 으레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예나 지금이나 코미디다. 이 영화가 공개됐을 당시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다양했다고 전해진다. 우스꽝스러운 떠돌이 채플린의 연기에 익숙해진 관객은 진부한 신파극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으며, 반면 비평가들은 채플린의 새로운 재능을 알아보았다. 

운명적으로 어긋난 길을 걷는 연인들, 그리고 누군가의 자살로 이어지는 영화 속 이야기는 고전적이며 채플린의 영화 중 가장 비극적 색채를 품는다. 파리의 여인》은 서로 사랑했으나 운명의 장난으로 엇갈리게 된 연인들의 슬픈 이야기를 다뤘다. 

 


채플린이 이 작품을 만든 이유는 비평가들 때문이었다. 몇몇 비평가들이 무성영화는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자, 채플린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채플린은 이를 위해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소품 등을 치밀하게 배치하고 적절히 사용하여 무성영화가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찰리 채플린이 각본, 연출에 작곡까지 한 파리의 여인(A Woman of Paris, 1923)에는 채플린이 나오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딱 한 컷에서 아무도 채플린인 줄 모른 채 등장한다. 그는 기차역의 짐꾼으로 잠깐 나오는데, 그것도 고개를 숙이고 짐을 들고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봐도 알아보기 힘들다. 이 작품이 코미디가 아니라 정통 멜로드라마여서 희극인으로서의 자신이 출현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채플린이 만든 모든 영화가 코미디일 거라 짐작하지만 착각이다. 그는 언젠가 '웃음은 눈물과 혹은 눈물은 웃음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키드시티라이트, 모던 타임스등 그의 대표적인 코미디영화도 짙은 비애감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갈 곳 없는 떠돌이의 고단한 삶, 그리고 현대 문명에 대한 예리한 풍자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33살이 된 찰리 채플린은 파리의 여인을 경력의 전환점으로 삼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평론가의 호평에 반해 관객들은 채플린이 등장하지 않는 퇴폐적인 멜로드라마를 별로 반기지 않았던 것 같고 이에 채플린은 크게 낙담했다. 

채플린은 미국 사회를 풍자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제목을 파리의 여인으로 지었으나, 미국 여러 주에서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영화 줄거리 

파리의 여인(A Woman of Paris)은 한 여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도입부에는 '운명의 여인이자 불행한 가정의 희생자들(Marie St. Clair, a woman of fate - victim of an unhappy home)'이란 자막이 있다. 이것은 주인공 마리와 장의 엇갈림이 단지 두 사람 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나 주변인 그리고 환경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리(Marie St. Clair)는 계부에 의해 자신의 방문이 잠기자, 창문을 통해 몰래 나가 애인 장(Jean Millet)을 만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마리를 계부는 집에서 좇아낸다. 마리는 애인 장의 집으로 가게 되지만, 거기서도 장의 아버지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자 둘은 결국 파리로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짐을 챙기러 집에 왔던 장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는 탓에 마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기다리던 마리는 장을 오해한 채 혼자 쓸쓸히 파리로 향한다.

 

마리 생클레르는 마법의 도시 파리에서 '여인들이 인생을 가지고 도박하는 곳'인 사교계에 등장한다. 시골마을의 단조로움에서 파리의 화려함으로 인생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문난 부자 피에르 레벨(Pierre Revel)과 가까워져 그의 애인이 된다. 

마리는 어느 날 파티장을 찾아가다 우연히 장과 그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장은 화가가 되어 있고 그들이 파리로 떠나려 했던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다. 오해가 풀린 마리는 장의 청혼을 받아들여 그와 결혼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마리는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연민 때문에 결혼한다고 장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결혼을 포기한다. 레벨에게 돌아온 마리는 전보다 더 화려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장은 무력감을 느끼며 이어 자살한다. 

장의 모친은 마리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에 복수하려고 총을 들고 마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마리가 아들이 있는 화실로 갔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오고, 아들의 시체 앞에서 우는 마리를 보고 장의 어머니도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고 마리와 장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고아들을 돌본다. 어느 날 마리는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엇갈려서 피에르 레벨이 롤스로이스를 타고 그녀들을 스쳐 지나간다.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영화 마지막 장면. 마차를 타고 가는 마리와 로스로이스를 타고 가는 피에르가 서로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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