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수아 트뤼포 1932년에 파리에서 태어난 트뤼포는 일설에는 그가 사생아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는 나중에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신비스럽거나 공포스러운 존재로서의 독특한 여성관에 영향을 끼쳤다.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당한 트뤼포에게 극장은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인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 주는 천국과도 같았다. 영화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트뤼포는 광적으로 영화에 몰입했다. 그야말로 영화광이었던 그는 15세 때 영화 모임을 결성하고 이 모임 이름을 '영화 중독 집회'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소년원(감화원)에 수감되는데 거기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당시 ‘카티에 라탱 시네클럽’을 운영하던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었..

앙투안 드와넬 시리즈 1959년 프랑수아 트뤼포는 자신의 소년 시절이 투영된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를 발표했다. 그 영화의 성공으로 트뤼포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시작을 화려하게 열었다. 이후 주연이었던 장 피에르 레오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긴 트뤼포는 20년에 걸쳐 4편을 더 제작하여 5편의 드와넬 시리즈를 완성하게 된다. 《400번의 구타》를 시작으로 《앙투안과 콜레트》( Antoine et Colette, 1962), 《도둑맞은 키스》(Baisers voles, 1968), 《부부의 거처》(Domicile Conjugal, 1970), 《사랑의 도피》(L'amour en fuite, 1979)까지 이 시리즈가 드러내는 앙투안 드와넬의 삶의 역정은 트뤼포 영화인생을 ..

장 뤽 고다르 고다르는 부유한 파리지앵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다르에게 독일의 낭만시와 프랑스 소설들을 읽게 했다. 2차 대전 중에는 스위스의 가족 저택에서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 후 파리로 돌아왔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고다르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중심으로 한 영화 클럽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프랑수아 트뤼포와 클로드 샤브롤, 앙드레 바쟁, 에릭 로메로 같은 사람들을 만나 영화에 대해 토론을 많이 했다. 그들은 3년간 약 2천여 편이 넘는 영화를 보면서 열띤 토론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분석과 생각을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했다. 그렇게 영화 잡지에 평론을 쓰면서 고다르는 자연히 영화를 만들 생각을 품게 되었다. 1954년에 첫 영화 《콘크리트 작전》(Operation Beton)을 찍었다. ..

어느 발레리나와 광대의 이야기 《라임라이트》는 찰리 채플린의 자전적 영화다. 라임라이트라는 제목은 19세기 초중반 영국 뮤직홀이나 극장에서 쓰였던 석회를 원료로 하는 무대 조명을 일컫는다. 영화 제작 연도는 채플린이 미국에서 활동할 시기인 1952년이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1972년이 돼서야 개봉되었다. 찰리 채플린은 이 영화에서 1인 8역까지 하고 라임라이트의 음악도 직접 작곡했다. 미국에서의 개봉 이듬해인 1973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음악상과 공로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의 개봉이 늦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채플린은 《라임라이트》에 자신의 가족들을 대거 출연시켰다. 아내 우나 채플린이 여주인공 클레어 블룸의 대역으로 출연했고, 그 외에도 우나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이 제럴딘, 조제핀, ..